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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3 ( Sun )
사외칼럼
[이상태의 일상 속으로] 양로호텔 가던 날

기사입력 2017-07-05 12:01

40대는 40마일, 50대는 50마일, 60대는 60마일, 70·80대는 80마일 속도로 죽음을 향해 달린다는 말을 그저 우스갯소리로 들었을 만큼 실감하지 못했다.

어느날 아파트의 이웃에서 내 픽업트럭에 이사짐을 좀 실어 운반해달라는 부탁이 왔다. 그 집에서는 80대 노인 6명이 일주일에 한두번씩 모여 고스톱 화투도 치고 별식을 만들어 먹으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때로는 공원에 모여서 양념 갈비를 구워 먹으며 유에스비로 연결한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따라 부르는 즐거운 일상도 적지 않은 이웃 할머니들이었다. 그 중 한분은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트로트가수의 큰 고모라고 한다. 집안 내력인지 음정박자 정확하게 부르시는 게 너무 잘 부르신다. 좀 이기적이지만 하고 싶은 일은 참지 못하고 하고야마는 성격이시다.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분이다. 7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웃으로 지내면서 그 중 다섯분이 돌아가셨다. 올해 87세로 마지막 남은 한분이 그 유명가수의 고모님이시다.

이삿짐을 옮기는 곳은 아들네 집이 아니라 오렌지카운티 가든그로브에 위치한 사설 양로호텔. 남녀 노인들이 강당에 모여 노래방 기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박수를 치고 있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방문한 보호자였다. 짐을 부리고 침대까지 조립하고 양로호텔 문을 나설 때는 강당의 노인분들이 숫자 맞추기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한 할머니가 띄엄띄엄 걷는 할아버지를 부축하며 어기적 어기적 엇벅자로 걷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몹시도 부러웠다. 함께 고통을 견디며 가는 마지막 생의 정거장.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던지 운전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어느덧 내 나이도 칠순을 넘기고 보니 그들의 뒤를 따르는 나이가 되어가는 거다. 일가 친척 한명도 없는 단신인 나는 언젠가 정부가 운영하는 시립 양로호텔에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영화처럼 사방이 쇠창살인 감옥같은 시설에서 보낼 확률이 높다. 한번 입실하면 영구히 나갈 수 없는 곳…. 방문자까지도 출입 때마다 간수같은 간호보조사들이 문을 열어주고 닫는 시설. 언젠가 90세의 노할머니의 물품을 배달해준 적이 있는데 이제 새삼 이웃 노인의 이삿짐을 나르다가 노인의 종착지를 알게 되었다. 백세인생이라고 좋아 날뛰면 무얼하나 ! 노령인구는 자꾸 증가하고 독거 노인은 늘어나서 외롭게 죽어가는데…. 99세까지 팔팔(88)하다가 딱 이틀만 아프다 소리없이 죽는 '구구팔팔' 인생이 입방아처럼 되뇌는 희망사항이지만 어디 입맛대로 될까?

병든 구순 노모를 간병하는 70대 아들마저 병이 들어 힘든 병수발을 오래 하다보니 분노와 죄책감이 교차하면서 우울증에 걸리고 만다는 얘기를 듣는다. 내가 건강하고 정신적 여유가 있어야 병구완을 제대로 할 수 있는데 결국엔 노모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사건이 신문 지상에 올려진다. 젊었을 때 안하무인이던 남편이 중병에 걸리자 아내는 대소변을 치워가며 간병한다. 늙고 병든 남편은 정신만큼은 멀쩡해 아내에게 온갖 욕지거리와 폭언을 젊었을 때처럼 일삼는다. 남편을 돌보는 고통으로 같이 시름시름 병들어가다가 어느 결엔가 한시바삐 이 생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몹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힌다는 그 아내의 고백에 마음이 쓰리다.

나는 주치의에게 의식이 오락가락하면 억지로 연명시키지 말고 안락사하는 데 동의하는 사인을 해두었다. 그리고 시신기증까지 서명했다. 선배 문인도 그와 같이해서 장례식도 못하고 영령기도만 올렸다. 나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 지금까지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왔다.세상을 떠날 때 남길 게 무엇이 있겠는가.

집이 있는 LA한인타운에서 머지 않은 글렌데일 공원묘지를 비롯, 토랜스 공원묘지, 할리웃 공원묘지까지 여러곳에서 열린 장례식에 다녀보았지만 꽃 한송이 없는 빈 묘석을 볼 때마다 쓸쓸하다. 늙어 살았을 때나 죽어도 방문객없는 뼈저린 외로움을 느낄 때면 백세인생이 과연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나라 저편으로 가는 길이 외롭고 서글프게 느껴지는 하루다.

이상태(핸디맨)
이상태/시인·핸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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